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황사영 백서, 1801년 배론의 토굴에서 쓰인 122행의 기록 1801년 신유박해가 한창이던 가을, 황사영 알렉시오는 충청도 제천의 깊은 산골 배론에 숨어 있었습니다.그가 머문 곳은 교우촌의 작은 토굴이었습니다.그리고 그곳에서 가로 62cm, 세로 38cm의 흰 명주에 작은 붓글씨로 122행의 긴 편지를 적었습니다.오늘날 ‘황사영 백서’​라고 부르는 문서입니다.백서에는 신유박해로 무너져 가던 조선 천주교회의 상황과 신자들의 체포와 죽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담긴 것은 아닙니다. 문서의 후반부에는 조선 교회를 다시 일으키고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황사영이 생각했던 여러 방안도 적혀 있었습니다.그 가운데에는 청나라의 힘을 빌리는 방법과 서양의 무력을 이용해 조선을 압박하는 방안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그래서 황사영 백서는 신유박해를 이해하는 중요한 교회.. 더보기
성지순례(29) 청주교구 멍에목성지 - 최양업 신부와 박해 속 교우촌의 역사 박해를 피해 깊은 산골로 들어온 신자들이 교우촌을 이루고, 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그들을 찾아와 미사와 성사를 집전했던 멍에목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 찬미 예수님.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구병산 자락 깊숙한 곳에 멍에목성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지금도 산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곳이지만, 200여 년 전 이곳을 찾은 천주교 신자들에게 깊은 산골은 단순한 삶의 터전이 아니었습니다.신앙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의 눈을 피해 들어온 피난처였습니다.멍에목은 ‘멍어목이’라고도 불렸으며, 윗멍에목인 구병리와 아래멍에목인 삼가리로 나뉩니다. 신자들이 처음 교우촌을 이루었던 곳은 현재 성지가 자리한 윗멍에목입니다.이 작은 산골에는 정해박해 때 신앙을 지킨 복자들의 이야기와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사목, 그리고 병인박해를 지나.. 더보기
성지순례(28) 원주교구 배론성지 - 황사영 백서와 최양업 신부의 안식처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숨어 살던 교우촌에서 황사영 백서가 작성되고, 성 요셉 신학교가 세워졌으며,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잠든 배론성지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 찬미 예수님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의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배론성지는 한국 천주교회의 여러 중요한 역사가 한곳에 이어져 있는 성지입니다.1801년 신유박해 때 황사영 알렉시오가 숨어 지내며 백서를 작성한 토굴이 있고, 1855년에는 성직자를 양성하기 위한 성 요셉 신학교가 세워졌습니다. 성지 뒤편 산에는 한국인 두 번째 사제인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배론’이라는 이름은 골짜기의 모습이 배 밑바닥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했습니다.깊은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에는 1791년 신해박해에서 1801년 신유박해로 이어지는 .. 더보기
성지순례(27) 청주교구 연풍순교성지 - 황석두 루카 성인의 고향과 순교의 역사 박해를 피해 신앙 선조들이 문경새재를 넘나들던 길목이자 병인박해의 순교터였던 연풍, 그리고 갈매못에서 순교한 성 황석두 루카의 삶과 그 유해가 고향으로 돌아온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 찬미 예수님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에 자리한 연풍순교성지는 문경새재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박해가 이어지던 시절, 신자들은 문경새재와 이화령을 넘어 충청도와 경상도 사이를 오가며 새로운 은신처를 찾았습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와 칼레 신부도 연풍을 거쳐 여러 교우촌을 찾아다니며 신자들에게 성사를 베풀었습니다.이렇게 연풍은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의 피난처이자 충청도와 경상도의 신앙 공동체를 이어 주는 길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866년 병인박해가 닥치면서 연풍에서도 많은 신자들이 체포되어 순교했습니다. 연풍에서 다시.. 더보기
성지순례(26) 안동교구 우곡성지와 홍유한 고택지 - 최초의 수덕자 홍유한의 삶과 묘소를 따라 † 찬미 예수님.경북 영주와 봉화를 이어 순례하다 보면 한 사람의 삶을 두 장소에서 만나게 됩니다.영주시 단산면 구구리에 있는 홍유한 고택지는 농은 홍유한이 1775년부터 생애 마지막까지 약 10년 동안 생활하며 수덕생활을 이어 간 터입니다.그리고 봉화군 봉성면의 우곡성지에는 1785년 선종한 홍유한이 안장된 실제 묘소가 있습니다.두 장소는 서로 다른 곳입니다.홍유한 고택지는 그가 살았던 곳이고, 우곡성지는 그가 선종한 뒤 묻힌 곳입니다.그래서 홍유한의 삶을 따라 순례한다면 구구리 고택지에서 그의 생활을 만나고, 우곡성지에서 생애의 마지막과 그 뒤로 이어진 신앙의 역사를 만나는 흐름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수덕자 홍유한농은 홍유한(洪儒漢, 1726~1785)은 한국 천주교회가 1.. 더보기
성지순례(25) 대전교구 다락골성지 - 최양업 신부가 태어난 새터와 무명 순교자들의 줄무덤 † 찬미 예수님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 농암리 깊은 골짜기에 다락골성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다락골은 한 가지 역사만을 간직한 성지가 아닙니다.이곳에는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태어난 새터 교우촌이 있고, 산등성이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순교자들이 묻힌 줄무덤이 남아 있습니다.한쪽에서는 성인과 복자, 가경자로 이어지는 한 신앙 가족의 역사를 만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박해 시대 순교자들의 흔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그래서 다락골성지는 새터와 줄무덤이라는 서로 다른 두 공간의 역사를 함께 살펴보아야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하게 다가옵니다. 다락골이라는 이름다락골이라는 이름에는 여러 유래가 전해집니다.다락골성지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이곳의 본래 이름을 ‘다래골’​로 소개합.. 더보기
성지순례(24) 대전교구 갈매못성지 - 성금요일 바닷가에서 순교한 다섯 성인의 자리 † 찬미 예수님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영보리, 서해 바다가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곳에 갈매못순교성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갈매못은 순교자의 유해를 다른 곳에서 옮겨 와 조성한 성지가 아닙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실제로 사형이 집행된 순교터입니다.1866년 3월 30일 이곳 바닷가에서 제5대 조선대목구장 성 안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와 성 민 루카 위앵 신부, 성 오 베드로 오매트르 신부, 성 장주기 요셉 회장, 성 황석두 루카 회장이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했습니다.그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주님 수난 성금요일이었습니다.갈매못성지에는 다섯 성인뿐 아니라 병인박해 동안 이곳에서 수많은 신앙 선조가 순교한 기억도 함께 전해집니다. 성지와 굿뉴스 자료에서는 그 수를 500여 명으로 전하고 있습.. 더보기
성지순례(23) 대전교구 강경성당 - 성 김대건 신부의 첫 사목에서 이어진 강경의 신앙 † 찬미 예수님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자리한 강경성당은 한국인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귀국과 첫 사목의 역사를 간직한 곳입니다.지금 볼 수 있는 강경성당은 김대건 신부가 머물렀던 1845년 당시의 성당은 아닙니다. 현재 성당은 그로부터 100년이 훨씬 지난 1961년에 세워졌습니다.김대건 신부가 실제로 머물며 미사를 봉헌하고 성사를 집전했던 곳은 강경 교우 구순오의 집이었습니다.강경성지는 구순오의 집 - 김대건 신부의 실제 첫 사목지, 강경성당은 그 역사를 이어 기억하고 현양하는 본당과 성지로 구분해서 보는 것이 좋습니다. 한국인 첫 사제가 되어 고국으로김대건 안드레아는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하이 김가항성당에서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았습니다.한국인 최.. 더보기